자료실태사공실기(서(序) )
태사공실기(서(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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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부터 목차까지만 옮겨 보았습니다.)


서(序) 

우리 시조(始祖) 태사공(太師公)에 관한 문적(文籍)은 고래로 문헌세감(文獻世鑑)·태사공실기(太師公實記)·능동지(陵洞誌)·능동실기(陵洞實記)·능동천년약사(陵洞千年略史) 등으로 간단이 없이 인출되었고 그 내용에 거듭 축적된 문자가 가히 만리장편(萬里長篇)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고문한자(古文漢字)로 되어 있어 금세(今世)에서 이를 해독치 못하고 원전(原典)도 일반이 구득키 어려우니 천에 하나 유능한 해독자가 나온다 하더라도 이를 문중에 전파시킬 일이 막연한 형편이다. 일부 단편적인 국역 소개가 산발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나 이는 구우일모(九牛一毛)에 지나지 못하고 그나마 적절한 해설과 고증을 더하여 시대의 흐름에 맞는 책자로서의 체계와 면모를 갖춘 것이 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 권씨로서는 이처럼 귀중한 시조 이래의 여러 전적이 인몰(湮沒)되기 전에 면밀히 수탐(蒐探)하여 유루 없이 집성하고 이것을 국역하면서 고증과 해설을 더하여 목하의 세대가 다 읽어 요해(了解)하고 후세에 전하게 하는 것이 권성인(權姓人) 모두의 거종적(擧宗的) 사업으로서도 시급한 일의 하나이다. 특히나 태사공의 실기에는 득성(得姓)한 이래 안동 권씨의 1천년 역사가 거의 다 집약되어 있어 이를 읽고 나서야 비로소 올바른 권성인이 되었다 할 수 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새천년의 세기말을 넘어서면서 지구상 인류의 문명은 그 발전의 빠르기가 과속을 넘어서 광속(光速)에 이른다고 표현되고 있다. 따라서 작금에 태어난 우리 인간은 한 세대를 살면서 두서없이 뒤바뀌는 가치관의 변화에 적응하기에 여념이 없으면서 기존의 윤리나 도덕관에는 눈길을 돌릴 말미조차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문명은 결국 인류의 삶을 위해서 발전해야지 문명 그 자체의 발전을 위해서 매진하다 보면 마침내 본말이 전도되는 모순에 빠질 것이다. 그 모순의 세계는 과속으로 치달아 대재앙의 충돌 사고를 일으킬 문명만이 있고 문화와 인성(人性)은 자취를 감춘 상태의 비인간화가 극대화된 현상으로서 그것이 팽창을 거듭하다가 스스로 폭발하는 종말을 맞게 될 것이다. 새천년의 가장 무서운 재앙은 인류가 인성을 잃는 것이라고 세계의 석학들은 염려하고 있다. 그런데 향락과 방종의 무한 논리에 편승한 일부 급진주의자들은 자고나면 그럴싸한 신사고와 학설을 창출해내 각광을 받으면서 누가 먼저 기존의 규범을 어디까지 뒤엎고 부정하는가에 대한 경쟁을 끝없이 벌이고 있다.


그와 같은 신사고의 전형(典型) 하나가 사람을 철저히 개체화하여 사회와 직결시킴으로써 모든 속박에서 해방시키자는 논리인 것 같다. 이 논리에서는 개인과 사회만이 있고 그 사이에 있는 중간 연결 고리로서의 가정과 친족이나 지역 및 종족(宗族) 등의 공동체 개념은 일체가 배척된다. 심지어 가정이라는 것 자체가 인간을 원천적으로 불평등하게 하는 장애이므로 이를 없애야 사람이 근본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해진다는 것이 그들의 학설이자 이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가정은 사회의 기본 단위이고 그 자체가 또한 사회이므로 이것이 견고해야 그것이 모여 확대된 형태의 사회와 국가가 튼튼히 짜일 터인데 이를 없애버리고 모래알같은 독립체의 개인만으로 세상을 구성하겠다는 것이 그들의 발상인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신사고는 그들이 굳이 이론적으로 뒷받침하지 않더라도 향락과 방종에 탐닉하는 일부 청소년 세대와 왜곡된 개념의 여성화의 물결에 병합되어 반대편의 목소리를 용납치 않고 있다. 그러한 논리는 그저 한번 던져만 놓아도 요원(燎原)의 불길처럼 번지는 위력을 지니고 있다. 모성애가 여성의 본능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남성이 씌워 놓은 굴레이기 때문에 이제는 여자가 거기에서 해방되기 위해 심지어는 아이를 잉태하지 말고 체외 수정이나 유전자 조작을 통해 자녀를 생산해야 한다는 억지 주장이 버젓이 소개되어 호응을 받고 있다. 여기에 이르면 가족과 가정만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자와 모녀 관계도 소멸된다. 만약 그러고서도 인류가 사회를 유지하여 살아남는다면 그때는 영장류(靈長類) 정도로 추락한 윤리관을 회복시키기 위해 부자유친(父子有親)의 도리를 새롭게 가르쳐 주입시키는 것이 교육의 당면 명제로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사람만 가정이나 가족 공동체에서 해탈시켜 개인화할 것이 아니라 성씨도 마음대로 선택하거나 만들어 쓰게 하자는 운동도 전개되고 있다. 우리와 비슷한 민족 규모를 가진 프랑스는 대략 2만여 개의 성씨를 가지고 있는데 그 명멸과 부침이 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대개 3백 개 미만의 성본(姓本)을 가지고 있거니와 이것이 오래도록 불변이었고 그 성씨의 탄생이 오래된 것일수록 명예로운 것으로 인식할 뿐만 아니라 각자가 자기 성씨에 대한 모욕을 받지 않으려는 정서를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 이같은 씨족 관념이 온갖 한국적 병리 현상의 근원이라고 생각하는 지식인 학자들은 어떻게든 이를 타파해야 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성씨에 대해 운위하는 것 자체를 시대착오적인 금기로 몰아 매도한다. 우리나라 사람의 성씨도 약 2만여 개로 분열한다면 현재와 같은 득성 시조와 성씨에 대한 개념이나 애착심이 희박해져 각급 성종(姓宗)은 그 응집력을 잃고 와해될 것이다. 이를 보고 축배를 들 사람들은 우리 사회가 전래로 지녀온 견고한 기반으로서의 성족 공동체와 집성촌 등이 역할해온 윤리적 자율 정화 기능의 막강한 위력을 도외시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어떤 환자에 대해 다각도의 임상적 진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자기가 개발한 치료법만 믿고 함부로 약물을 투입하거나 수술을 해댄다면 그런 의사는 인술을 펴는 행위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지금 낱낱이 해체되어가는 가족과 가정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 우리의 가정과 가족을 만들어 내면서 그것이 확대된 공동체 기구가 친족이고 성친이며 씨족임을 알아야 한다. 이를 진솔하게 인식하고 접근하는 것을 시대착오적인 인습으로 여겨 남의 이목을 의식하거나 부끄러워하는 자폐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기 조상을 드러내는 대신 인폐하거나 부정하고 선대를 기리는 대신 비하하고 매도하며 그 전통을 살려 계승하는 대신 질식시켜 부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지식인과 학자가 각광을 받고 행세하는 곳은 우리나라 뿐일 것이다. 그러는 것만이 마치 세계시민화에의 길인 것처럼 착각하는 세태를 직시할 안목을 길러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 권성인은 그 태어난 바와 소종래(所從來)를 알기 위해 반드시 이 실기를 읽어야 한다. 그리하여 자아를 재발견하는 토대에서 생각의 폭을 넓히고 인간성을 철저히 해체하는 과속 문명의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서 살아남을 진실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함에 있어 이 큰 저술이 우리에게 하나의 지주(砥柱)와 같은 역할을 해낼 것을 믿으며 또한 바라 마지 않는다. 

2000년 2월 18일

안동권씨중앙종친회 명예회장(安東權氏中央宗親會名譽會長) 

전 서울대학교 한국교원대학교 총장·문교부 보사부 환경처 장관· 

대한민국학술원회장·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 

현 학교법인 성균관대학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세계학술원 회원 

태사공후(太師公後) 34세손 권이혁(權彛赫) 근지(謹識)